1269년(원종 10)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의 기관(記官) 최탄(崔坦) 등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安慶公淐)을 세운 임연(林衍)을 친다는 구실로 난을 일으킨 뒤,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 이북 서해도(西海島)의 6성을 들어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이를 계기로 원의 세조(世祖)는 이듬해 자비령을 경계로 삼아 그 이북 지방은 모두 원나라의 소유로 한 뒤 서경에 rtg 슬롯를 설치하고 최탄으로 rtg 슬롯총관을 삼았다. 이에 원종은 원의 연경(燕京)까지 직접 가 rtg 슬롯 반환을 주장하였으나 관철되지 않고 오히려 1275년(충렬왕 1) rtg 슬롯총관부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고려의 끊임없는 반환 요청에 따라 1290년(충렬왕 16) rtg 슬롯 지역을 돌려받게 되었으며 고려 영토에 있던 rtg 슬롯는 요동(遼東)으로 옮겨졌다. 이후 공민왕대 원명교체기(元明交替期)를 활용하여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의 rtg 슬롯공격이 실행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