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상진(金尙辰). 평안북도 강계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강계 영실학교(英實學校) 교사로 재직 중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6월을 언도받았다.
복역 뒤 1924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무장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에는 통의부계열의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북만주민적조사위원(北滿洲民籍調査委員)에 임명되었다.
1926년 9월에는 김좌진(金佐鎭)의 신민부(新民府) 조직에 참여하여 민사부위원·교육부위원·군사부위원 슬롯 머신 앱 맡으면서, 1931년 5월까지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38년 1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