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도(淸道). 증조는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이다.
1340년(충혜왕 복위 1) 충혜왕의 실정을 계기로 조적(曺頔)의 난이 일어난 뒤 왕이 원슬롯 꽁 머니에 불려갈 때, 대호군(大護軍)으로서 호종한 공으로 1342년에 일등공신이 되어 후손들까지 은전을 받았고, 그해에 신궁건축의 감독관이 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왕이 원슬롯 꽁 머니의 사신 대경(大卿)·타적(朶赤) 등에게 구타당하고 압송되자 시종하는 무리들이 모두 도망갔으나, 응양군(鷹揚軍)으로서 창을 맞고 피를 흘리면서 끝까지 호송하였다.
슬롯 꽁 머니에서도 충혜왕을 미워하던 자정원사(資政院使) 고용보(高龍普)에게 잡혀 투옥되었으나, 그 뒤 귀국하여 1343년에 원슬롯 꽁 머니로부터 충혜왕을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출신지인 청도군의 지군사(知郡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