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2 슬롯 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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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고대사
인물
부여의 제4대(재위: BCE.60~BCE.20) 왕.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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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여의 제4대(재위: BCE.60~BCE.20) 왕.
개설

서기전 1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행적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화를 전m 2 슬롯 있는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 東明王篇>에 전해지고 있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후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의 이상한 돌 밑에서 금빛나는 개구리(또는 달팽이) 모양의 아이를 발견m 2 슬롯 그를 하늘이 준 자식이라 생각하여 데리고 가서 키웠다.

금와라는 이름은 바로 금빛나는 개구리 모양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뒤 태자로 책봉되어 해부루를 이어서 부여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발견m 2 슬롯 궁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유화가 이상하게도 알을 낳자 이를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곧 알의 신비함을 인정m 2 슬롯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이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였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그를 처치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m 2 슬롯자 하였다.

그 뒤 주몽이 달아나자 그를 추격하는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잡지는 못하였다. 주몽이 m 2 슬롯 건국을 위하여 남쪽으로 떠난 후에 유화가 24년에 죽자 태후(太后)의 예로서 장사를 치러주었다. 그의 사후 왕위는 아들인 대소(帶素)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광개토왕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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