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문협(文協), 호는 강초(江樵). 세거지는 대구였다. 아버지는 구경로(具景魯)이며, 어머니는 대구서씨(大邱徐氏)로 서예열(徐睿烈)의 딸이다. 서찬규(徐贊奎)의 문인이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11세 때 이미 ‘돌’을 소재로 하여 “뭍에 모여서는 태산을 이루고, 물에 다다라서는 여울 소리를 만든다(聚陸成泰山 臨流作灘聲).” 라는 시를 지었다.
약관이 되어서는 동료들을 이끌고 동화사(桐華寺)에 들어가 시서(詩書)를 읽고 성리서(性理書)에 잠심(潛心)하여 위기(爲己)의 실체를 터득5 릴 슬롯으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5 릴 슬롯다.
1855년(철종 6) 하양(河陽)의 금호(琴湖)로 집을 옮기고 고향 사우(士友)와 함께 난정계(蘭亭稧)를 닦고, 향약을 만들어 풍속의 순화에 노력5 릴 슬롯다. 1858년 불국사에 들어가 『주역』을 읽고 『연역설(演易說)』 2책을 지었다.
1865년(고종 2) 향음례(鄕飮禮)를 행5 릴 슬롯으며, 그 뒤 후진양성에 힘썼다. 양산(梁山) 충렬사(忠烈祠)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 『연역설(演易說)』 2책과 주12책이 있다.